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고 나오는데 로비에서 전남편이 낯선 여자와 웃고 있었다. 손끝이 저릿했다. 방금 십 년을 정리하고 나온 참이었다. 그런데 저 웃음소리는 처음 보는 거였다. 결혼하고 나서 단 한 번도 저렇게 편하게 웃는 얼굴을 본 적이 없었는데. 여자는 나를 보지 못했다. 아니, 보고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test10나는 로비 기둥 뒤에 멈춰 섰다. 도망치듯 나가고 싶었지만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여자는 캐리어를 끌고 있었다. 방금 공항에서 오는 길인 듯 옷차림이 낯설었다. 전남편은 그 캐리어를 대신 받아 들며 또 웃었다. 결혼 십 년 동안 내 짐 한 번 들어준 적 없던 사람이.
test11두 사람 쪽으로 몇 걸음 다가갔다. 엿듣고 싶어서가 아니라, 발이 저절로 그리 갔다. "오랜만이다. 얼마 만이야." 전남편이 말했다. "칠 년? 아니다, 팔 년." 여자가 웃으며 답했다. "언니는 잘 지내?" 언니. 그 단어가 귀에 걸렸다.
test12나는 숨을 죽였다. 언니라니. 내가 언니라고 불릴 사람이 있던가. 그때 전남편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그라들었다. "누나, 아직 소식 못 들었구나."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누나. 여자가 그의 여동생이 아니라, 그가 그녀를 누나라고 부르고 있었다.
test13나는 그제야 여자의 얼굴을 제대로 보았다. 낯이 익었다. 결혼식 사진 한구석에서 본 적 있는 얼굴이었다. 신랑 측 하객 중, 이름도 모른 채 스쳐 지나간 얼굴. 전남편에게 사촌 누나가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었다. 어릴 때 부모를 잃고 큰집에서 자라다 스무 살에 이민을 갔다던 그 사람. "무슨 소식?" 여자가 물었다.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test14전남편이 손으로 얼굴을 한 번 쓸어내렸다. "엄마가... 지난주에 돌아가셨어. 연락이 안 돼서 못 전했어." 여자의 캐리어 손잡이를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진 얼굴로 그녀가 물었다. "왜 이제 말해."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시어머니의 부고를, 이혼 서류에 도장을 찍는 그 순간까지 아무도 나에게 알려주지 않았다는 사실이 뒤늦게 얹혔다.
test15이상한 일이었다. 슬퍼해야 할 이유는 없었다. 이혼한 마당에, 전 시어머니의 부고는 이제 나와 상관없는 소식이었다. 그런데도 서운했다. 십 년을 며느리로 살았던 사람에게, 마지막 인사조차 허락되지 않았다는 게. 나는 조용히 발걸음을 돌리려 했다. 그때 전남편이 나를 알아봤다.
test16"...왔었어?" 그가 물었다. 놀란 얼굴이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류 때문에. 방금 다 끝났어." 그가 잠시 말을 잃었다. "미안해. 엄마 일도, 다른 것도... 다 늦게 말해서." 처음이었다. 그가 나에게 먼저 미안하다고 말한 게.
test17나는 잠깐 망설이다 말했다. "장례식장이 어디야. 잠깐이라도 들를게." 그가 놀란 눈으로 나를 봤다. 사촌 누나도 마찬가지였다. "안 그래도 돼." 그가 말했다. 하지만 나는 이미 알고 있었다. 이건 그를 위해서가 아니라, 십 년간 나를 며느리로 받아준 그분을 위한 인사라는 걸.
test18장례식장에서 나는 삼십 분 정도 머물렀다. 아무도 내게 왜 왔냐고 묻지 않았다. 그저 다들, 아직도 이 사람이 우리 가족이구나, 하는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돌아 나오는 길에 이혼 서류가 든 봉투를 다시 열어 보았다. 도장 자국이 선명했다. 이상하게도 후련했다. 그 웃음도, 그 오해도, 이제는 내 것이 아니었다. 나는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이 건물을 나서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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